아침에 일어나서 매일 하는 일들에 일정한 ‘순서’를 붙여봤다.
루틴 어플의 알림이 울리면 아무 생각없이 정해진 일을 한다. 다음 알림이 울리면 다음 일을 하고, 울리면 또 다음 일을 하는 일종의 ‘모닝루틴’이다.
숱한 실패를 거쳐 아침 기상과 모닝 루틴에서 내 의지를 모조리 빼기로 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알림이 울리면 정해진 일을 한다는 약속과 구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11일 연속 매일 운동하기에 성공했다. 매일 일기쓰기도, 명상도, 책 읽기도 성공했다.
하지만, 성공한 것보다 더 좋은 건 늦잠에 대한 죄책감이 줄었다는 것이다.
늦잠을 자면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기분이 상했다. 내가 한심해보여서, 이러면 안되는데 또 해버렸네. 일을 하고 난 후에도 이거밖에 안했는데 벌써 이 시간? 이란 생각에 성취감을 느낄 수 없었다.
이런 나쁜 감정이 아침루틴을 일정하게 실행하는 것만으로 많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 10일동안 아침 기상시간은 제각각이었다. 8시, 9시, 10시, 6시 반, 어떤 날은 4시 반에도 일어났다. 하지만 몇시에 일어나든 일정한 컨디션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아침 일기는 되도록 짧게 쓴다.
일기는 힘든 일이 있을 때 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수단이었기에 일기장엔 온갖 힘든 마음과 생각들이 그득했다.
하지만 아침시간대로 옮겨서 시간을 짧게 설정한 후로 내용이 사뭇 달라졌다.
어제 잠들기 전에 읽은 책이 재밌었다. 빨리 또 읽고 싶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남편과 침대에 나란히 누워 이런 저런 수다를 떨었다. 눈뜨자마자 일어나서 출근준비를 하는 아침이 아니라 이렇게 여유롭게 남편과 수다떠는 지금이 좋다.
내 블로그 아무도 안 보는데 글 쓰고 디자인 바꾸고 기능 테스트해보는 게 왜 이렇게 꿀잼?
모닝루틴에 이어 뽀모도로를 써 봤다. 중간중간 쉬어주니 빨리 재개하고 싶다는 기분이 들고, 오랫동안 쉼 없이 작업할 때보다 질리거나 지친다는 느낌이 사라졌다.
아침 루틴이 잘 자리를 잡고 있는 듯 하다. 이젠 기상시간 앞당기기에 도전해봐야겠다.
시간이 짧기에 깊이도 없고, 내용도 비슷비슷하지만 내가 느낀 ‘좋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늘었다. 사소하고 좋은 것들이 쌓이니 ‘이걸 해 보고 싶다. 저걸 해봐야겠다’는 문장도 늘어났다. 실제로 그 마음을 곧바로 실행한 날도 있었다.
물론, 갑자기 다가온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나 엄마와 친구들에 대한 생각이 드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묻어두기보다 뜬금없이 그것들이 왜 떠올랐는지 곰곰히 생각할 수 있었다.
이런 아침들을 기록하는 인스타 계정을 만들었다. 팔로워도, 팔로우도 0명.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나만 보는 계정. 그리고 이 글을 남기고 있는 나만 열심히 보는 블로그. 그런데 이것들이 묘하게 나를 일으켜준다. 무너지지 않게 잡아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오늘의 할 일을 하러 다시 나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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コメント一覧 (2)
유튜브 통해서 여기로 들어오게 되었어요.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아 재미있네요! 저도 다시 기록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화이팅입니다!
림이님! 제 블로그에 처음으로 댓글 달아주신 분이세요 기록 안하면 진짜 뭘 하고 살았는지 기억이 안 나서 이렇게나마 기록 중이에요. 림이님도 꼭 같이 해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