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화)
갑자기 생각나서 짱구와 아따맘마의 일본어판을 유튜브로 찾아보았다. 공식채널이 있어서 무료로 볼 수 있었다. 어릴 적 한국어로 보았던 만화를 일본어로 다시 보는 느낌은 색다른 울림을 준다. 말과 목소리는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3/22(수)
무인양품주간(10일간 전 상품 10% 할인)을 맞아 미뤄왔던 가구 쇼핑을 하는 중이다.
나의 행동을 재촉하는 것은 ‘한정기간’일까? ‘10% 더 싸게’ 구매할 수 있다는 부분일까? 둘 다 해당되지만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써서 어떤 상품이 좋을지 검색하게 한 것은 ‘전 상품’이라는 안심감일지도 모르겠다. 20-30%세일이라고 혹해서 들어갔더니 [일부상품](그 상품은 대개 후짐) 을 많이 경험해봤다. 품질로 승부하는 무인양품의 모든 상품을 10% 싸게, 한정 기간만 살 수 있다면 얼른 찾아보고 챙길 건 챙겨야지 하는 심리가 적극적으로 자극되는 것 같다.
3/23(목)
누군가 부러워 미치겠을 때라는 유튜브 쇼츠를 봤다. 지난 주에 읽었던 책 [너 자신의 이유로 살라]의 내용과 이어졌다. 질투를 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자신의 ‘진짜 욕망’과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질투는 ‘단서’이고, 방향을 알려주는 ‘신호’라는 말이 핵심이었습니다.
당신이 질투하고 시기하는 것은 누구? 무엇인가요?
3/24일(금)
책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를 읽었다. 내용엔 관심이 없고, 그저 이석원님과 박정민님의 글이 궁금해서 집어들었다. 그닥 기억에 남는 것도 없다. 두분 다 솔직한 글을 쓰지만 이석원님은 다듬고 정제하는 분이고, 박정민님은 사진찍듯 뱉어내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느 쪽 글이 더 쓰고 싶나 하면 둘 다 가능한 멀티플레이어가 되보는 걸 어떨까.
3/25(토)
숏컷을 한지 한달이 지났는데 많이 후회되는 듯하다. 고데기할 머리도 없는데 봉고데기로 머리하는 영상을 찾아본다. 30대가 되면 20대의 나를 뒤집어버리는 순간이 많다. 나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사실은 내 얼굴을 맘에 들지 않는 순간이 훨씬 많다는 걸 깨닫거나, 남을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스스로 자신이 없을 땐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는 걸 꺼린다. 내 인식보다 무심코 하는 행동을 제3자처럼 관찰할 때 문득 문득 놀랄 때가 있는 것 같다.
3/26 (일)
책 [일언력]을 읽었다. 중간중간 진부한 내용도 있었지만 한 문장을 건져냈다.
생각하게 하려면 ‘발문’해야 하고, 행동하게 하려면 ‘구체적인 방법’과 ‘자신만의 why’를 찾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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