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 재밌고 즐거운 일이라는 말은 자주 듣고 쓰는 말인데 늘 위화감을 느끼는 지점이 있었다. 바로 ‘즐거운’ ‘재밌는’이라는 부분이다. 일본어로 즐겁다는 楽しい(たのしい)인데 직장인이 되면 상사나 선배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仕事楽しい? 일 재밌니?
신입 때는 그냥 모든 게 새롭고 배우는 게 마냥 즐거워서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즐겁다는 게 뭘 말하는 건지 몰라서 망설이곤 했다.
楽しい를 구글에 검색하면 이런 이미지들이 나온다.
하나같이 표정은 웃고 있고 두 팔을 뻗어 만세를 외친다거나 점프를 뛰는 등 즐거움을 참을 수 없어 텐션이 높아진 모습이다. ‘즐겁냐’는 질문을 받으면 저런 상태를 떠올리게 되고, 일할 때 저런 상태인지 자연스럽게 짚어보게 된다.
일하면서 저런 순간은 물론 있다. 하지만 길면 하루, 대부분 찰나의 순간으로 끝난다. 그런 순간이 있었느냐?는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일하는 시간 중 즐거운 순간보다 그렇지 않은 순간이 대부분이니 나는 이 일이 즐겁지 않은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기 일쑤였다.
일뿐만이 아니었다. 취미생활이든 뭐든 설렘과 호기심으로 시작해도 즐거운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무덤덤한 시간이 더 길어지면 아, 이것도 역시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들곤 했다.
남편은 매일이 즐겁다고 말했다. 나는 ‘즐거운’ 일만 해! 라고 자주 말했다. 나는 감정기복이 불편한 사람이라 들뜨고 기쁜 상태보다 차라리 평온한 0의 상태를 선호했다. 이런 사람에겐 즐거운 일을 하자는 이야기는 고민스러운 말이었다.
그러나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없다면, 어떤 활동에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침대에 누워있는 게 맞는 거 아닌가? 그러나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뭔가를 한다. 사부작사부작 혼자 생각하고 만들어보고 그냥 계속 뭔가를 하고 있는 나를 본다.
책을 읽든 인터넷 기사를 읽든 궁금한 마음이 들면 뭐든 읽고 듣고 정보를 모은다.
독서로 끝내도 되는데 노션에 꼭 기록을 남긴다거나
굳이 뭔가에 대해 고찰을 하고 나만의 생각을 정리해보기도 하고
신경쓰이는 툴이나 이론, 개념이 있으면 나도 한번 적용해보려고 한다.
굳이 영상을 찍고 몇 시간씩 시간을 들여 편집을 하고
집 정리를 신경쓰고 외식보다 집밥을 늘리려고 노력한다.
굳이 네이버가 아닌 워드프레스 블로그를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여 만들어서 쓰고 있다.
이런 것들을 하루 이틀이 아니라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예전부터 계속해오고 있다. 자주 그리고 오래 해온 것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이 활동들 역시 벅찬 기쁨같은 즐거움의 순간은 아주 잠깐이지만 다른 활동과의 차이점을 말하자면 ‘조용히 몰입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생각이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
궁금한 것, 해 보고 싶은 것이 점점 늘어난다.
이렇게 하고 싶다든지, 저렇게 하고 싶다든지 하는 생각이 많아진다.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이것저것을 알아보고 질문하고 직접 해보느라 몇 시간씩 순삭된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집중된 상태를 잘 유지한다.
내게 있어 ‘즐겁다’는 것은 어떤 긍정적인 감정같은 것이라기보다 일이든 취미든 무언가를 해보았을 때
- 집중되고 몰입되는가 (시간이 순삭되는가)
- ‘더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유지되는가
이 2가지가 내게 있어 즐거운가? 즐겁지 않은가? 를 판단하는 지표라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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